
무너진 자리에서 배운 나라들
1부에서 경기도의 재정 비상을, 2부에서 전국 지방의 실태와 일본 유바리의 몰락을 다뤘다. 두 편 모두 어두운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 마지막 편을 절망이 아니라 처방으로 채우고 싶다. 다행히 우리보다 먼저 재정 위기를 겪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나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의 경험이 막연한 이상론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매뉴얼에 가깝다고 본다.
여기서 살펴볼 세 나라의 처방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 일본 유바리는 무너진 뒤에 규율을 세운 사후 대응의 사례이고, 독일은 애초에 빚을 못 늘리게 막은 사전 방어의 사례이며, 캐나다는 방향을 정해 성역 없이 도려낸 개혁의 사례다. 개인적으로 이 셋을 나란히 놓고 보며, 재정 건전성이라는 게 하나의 만능열쇠로 지켜지는 게 아니라 여러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유지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 가지 미리 짚고 싶은 건, 이 나라들의 해법을 그대로 복사해 붙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각국은 저마다의 정치 구조와 지역 격차 속에서 그 처방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결과’가 아니라 그 처방이 통했던 '원리’를 훔쳐야 한다고 본다. 무엇이 그 나라를 다시 세웠는지, 그 핵심 원리를 이해해야 우리 현실에 맞게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 - 사후 규율과 사전 방어
먼저 일본 유바리다. 2부에서 유바리가 인구 12만에서 1만대로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편에서 주목할 건 그 이후다. 일본은 유바리의 충격을 계기로 지방정부의 재정을 규율하는 새 제도를 만들었다. 핵심은 투명성이다. 예전에는 일반회계만 보면 재정이 멀쩡해 보였는데, 정작 숨은 빚은 특별회계나 산하기관에 감춰져 있었다. 새 제도는 이 모든 것, 즉 특별회계와 산하기관, 총부채까지 전부 공개하도록 했다. 그러자 재정 위험 신호가 켜진 지자체 수가 크게 줄었다. 나는 이 사례가 알려주는 교훈이 분명하다고 본다. 병을 고치려면 먼저 병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숨겨진 빚은 없는 빚이 아니다.
독일은 정반대 방향에서 접근했다. 애초에 빚을 못 늘리게 막은 것이다. 독일은 2009년 헌법에 이른바 부채 브레이크를 못 박았다. 구조적 재정적자의 상한을 헌법 수준에서 정해, 연방은 물론 주 정부도 함부로 새 빚을 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나는 이 처방의 핵심이 기술이 아니라 위치에 있다고 본다. 이 규칙이 헌법에 있다는 점 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선거를 앞두고 인기 지출을 늘리고 싶어도, 헌법을 어기는 정치적 비용이 워낙 커서 함부로 손대지 못한다. 결국 이 준칙을 지탱한 건 정교한 조항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매장된다’는 사회적 합의였다.
다만 나는 독일 사례를 무조건 예찬하고 싶지는 않다. 최근 독일 안에서도 이 준칙이 도로나 국방 같은 꼭 필요한 미래 투자까지 지나치게 묶는다는 비판이 커져 완화 논쟁이 벌어졌다. 규율은 분명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미래를 위한 투자까지 죽일 수 있다는 딜레마다. 나는 이 지점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본다. 어떤 처방도 부작용이 있고, 중요한 건 그 균형을 어디에 두느냐다.
캐나다 - 성역 없이, 그러나 방향을 갖고
세 번째는 캐나다다. 1990년대 초 캐나다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선진국 중 재정이 위태로운 나라라는 조롱까지 받던 처지였다. 그런데 이 나라는 1990년대 중반 이른바 프로그램 리뷰를 통해 모든 부처의 지출을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어떤 사업은 절반 가까이 삭감될 만큼 성역이 없었고, 그 결과 몇 년 만에 재정을 흑자로 돌려세웠다. 나는 이 반전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본다. 무너진 것처럼 보이던 재정도 의지와 실행이 있으면 되돌릴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핵심이 있다. 캐나다의 성공은 무작정 다 줄인 게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지 명확한 우선순위를 세운 데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게 결정적이라고 본다. 그냥 일괄적으로 몇 퍼센트씩 깎는 삭감은 정치적으로는 편하지만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반면 캐나다는 국가가 정말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먼저 가른 뒤 칼을 댔다.
흥미롭게도 이 방향은 1부에서 본 경기도의 대응과 겹친다. 경기도 역시 민생에 꼭 필요한 사업은 지키고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사업은 중단하겠다고 했다. 방향 자체는 캐나다와 같은 셈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캐나다는 이를 국가 차원에서 몇 년에 걸쳐 흔들림 없이 끝까지 집행했다는 점이다. 나는 개혁의 성패가 방향을 세우는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가는 뚝심에서 갈린다고 본다. 시작은 누구나 하지만 완주는 소수만 한다.
세 나라의 처방을 우리 현실에 옮긴다면
그렇다면 이 세 처방을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건 정책 제언이라기보다 내가 그려본 방향에 가깝다. 큰 틀에서 세 가지를 조합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일본식 투명성이다. 지방재정의 숨은 빚까지 전부 드러내 주민과 의회가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둘째, 독일식 사전 규율이다. 되돌리기 어려운 현금성 약속을 만들기 전에 그 지속가능성을 심사하는 장치를 두는 것이다. 셋째, 캐나다식 우선순위 개혁이다. 위기 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지 방향을 정해 흔들림 없이 집행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반드시 붙여야 할 단서가 있다. 한국은 지역 간 격차가 워낙 커서, 독일식 준칙을 모든 지자체에 똑같이 들이대면 2부에서 본 영양군 같은 곳은 곧바로 숨이 끊길 수 있다. 스스로 벌 돈이 6%뿐인 곳에 '빚을 내지 마라’ 고만하면 그건 처방이 아니라 사형선고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재정 규율을 세우되, 취약한 지역에 대한 교부세 재분배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규율과 배려는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짝이다.
그리고 세 나라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열쇠가 있다. 결국 관건은 주민의 감시와 참여라는 것이다. 유바리의 비극이 시의회의 견제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점, 독일의 준칙이 사회적 합의로 지탱된다는 점을 떠올리면 분명해진다. 재정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그 돈으로 살아가는 주민이 함께 지켜봐야 하는 공동의 살림이다.
당신의 지역은 경기도인가, 유바리인가
세 편에 걸친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경기도에서 시작해 전국의 지방을 거쳐, 유바리와 독일과 캐나다까지 돌아왔다. 이 긴 여정에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하나다. 재정 위기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무너지는 것 자체는 외부 충격일 수 있어도, 그 뒤에 규율을 세우느냐 방치하느냐, 방향을 갖고 개혁하느냐 진통제로 미루느냐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실전 원칙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첫째, 지역의 '부자 라벨’을 믿지 말고 재정자립도와 부채 추이 같은 구조를 직접 확인할 것.
둘째, 내 자산을 부동산 사이클 하나에만 묶어두지 말 것.
셋째, 감액 추경이나 재정 경보 같은 정책 신호를 남보다 먼저 읽고 대비할 것. 이건 특정 투자를 권하는 게 아니라, 위험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자는 다짐에 가깝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기가 닥칠 때가 아니라, 위기를 못 본 척 미룰 때다. 유바리는 그것을 미루다 도시를 잃었고, 독일과 캐나다는 정면으로 마주해 다시 일어섰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당신의 지역은 지금 경기도처럼 위기를 선언하고 마주할 힘이 있는가, 아니면 유바리처럼 조용히 미뤄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확인하는 일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출처: 일본 유바리시의 파산 이후 도입된 지방정부 재정건전화 제도와 재정 위험 지자체 감소는 연합뉴스 등의 보도를 참고했다. 독일의 부채 브레이크(2009년 헌법 명문화)와 그 운영 원리, 최근의 완화 논쟁은 독일 재정준칙 관련 여러 분석과 보도를 종합했다. 캐나다의 1990년대 프로그램 리뷰와 재정 흑자 전환 과정은 캐나다 재정개혁 관련 자료를 참고했다. 한국 적용 방향과 지역 격차, 교부세 재분배의 필요성은 1부와 2부에서 다룬 국내 지방재정 현황과 관련 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각국 사례의 세부 수치는 시점과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