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달러 아침 식사가 나라를 바꾼 날
값싼 우산과 전자시계를 만들던 나라가, 오늘날 중국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반도체 제국이 되었다. 대만 이야기다. 그런데 이 거대한 전환의 출발점은 거창한 기념식이 아니라, 1974년 2월의 어느 추운 아침 식탁이었다. 두유와 요우티아오를 파는 작은 아침 식당, 값으로 치면 대략 10달러 남짓한 밥상에 일곱 명이 모였다. 경제부장 쑨윈쉬 안을 비롯한 참석자들, 그리고 이 계획의 설계자였던 RCA 연구소장 판원위 안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노동집약 산업에서 기술집약 산업으로, 즉 반도체(IC)로 방향을 틀자는 데 합의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흔히 "1974년에 ITRI를 세웠다"고 오해하지만, 정확히는 ITRI는 이미 1973년에 설립돼 있었고 1974년 아침 회의는 그 ITRI에게 '반도체로 간다’는 방향을 맡긴 결정이었다. 나는 이 구분이 사소해 보여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릇을 먼저 만들고, 이듬해 거기에 무엇을 담을지 결단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결정의 비용과 결과의 극단적 비대칭이다. 투입은 아침값 10달러와 몇 해의 시간이었는데, 결과는 수십 년간 이어질 국부와 지정학적 방패였다. 이건 조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인데, 인생을 바꾸는 결정은 종종 거대한 무대가 아니라 평범한 식탁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순간을 알아보고 실행에 옮기느냐다.
왜 대만의 50년 전 선택이 지금 한국의 거울인가
이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는 대만이 50년 전에 내린 결론을 지금 한국이 뒤늦게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가격으로는 후발국을 못 이긴다"는 판단이다. 1970년대 대만은 저임금 조립업이 동남아 후발국에 추격당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이대로면 대체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두고 내리는 결론과 정확히 겹친다. 대만이 느낀 위협의 자리에 한국은 중국을 놓고 있는 셈이다.
둘째, 단일 산업 의존이라는 구조다. 최근 한국 성장률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서, 반도체를 빼면 성장률이 초라해진다는 이른바 '반도체 착시’가 자주 지적된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결정적 차이를 본다. 대만은 반도체를 의도적으로 심었고, 한국은 반도체 하나에 의존하면서 '다음 사다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반도체 강국이라도, 하나는 씨앗을 뿌린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착시에 기대고 있다는 이 대칭이 이 편의 핵심이라고 본다.
셋째, 위기 대응의 타이밍이다. 대만은 위기가 완전히 터진 뒤가 아니라 터지기 전에 움직였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걸렸다. 보통 나라든 기업이든 잘 나가는 산업은 끝까지 지키려다 무너지는데, 대만은 정점에서 스스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1974년 아침 회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이미 지나간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지금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를 뚫고 씨앗이 자라기까지
이 결정은 결코 순탄하게 실행되지 않았다. 중반의 진짜 반전은 엄청난 반대였다. "서구 선진 기업도 힘들어하는 기술인데, 자원도 자본도 없는 대만이 뛰어드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기술관료와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컸다. 그 반대를 정치적으로 뚫어낸 인물이 쑨윈쉬 안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리더십의 본질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반대를 감당하며 밀어붙이는 데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설계자 판원위안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그는 급여도 직위도 받지 않고 여비만 받으며 미국과 대만을 오갔다. 자기 몫을 하나도 챙기지 않고 조국의 산업 미래만 설계한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심 없는 전문가 한 명의 존재가, 국가 대전환의 숨은 성공 조건이라고 본다.
그리고 씨앗은 자랐다. 1976년 ITRI는 RCA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엔지니어 열아홉 명을 미국으로 보내 훈련시켰다. 단 열아홉 명이 제국의 씨앗이 된 것이다. 1977년 가동한 첫 IC 생산라인은 불과 6개월 만에 수율 70퍼센트를 달성해, 기술을 넘겨준 원조 RCA 공장의 50퍼센트를 오히려 추월했다. 이후 1980년 UMC가 세워질 때는 민간 투자가 꺼리자 정부와 국책은행이 마중물을 댔고, 1987년에는 모리스 창이 이끄는 TSMC가 ITRI에서 분사하며 세계 최초의 순수 파운드리 모델을 열었다. 국가가 물꼬를 트고 민간이 이어받는 방식으로, 오늘날 파운드리 세계 1위(점유율 60퍼센트대)라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개인이 이 이야기에서 챙길 수 있는 전략
국가 차원의 교훈을 개인 삶으로 옮기면 몇 가지 원칙이 나온다. 나는 이걸 남에게 권하는 마음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규칙으로 정리해 봤다.
첫째, 지금 잘 나가는 것이 정점일 때 미련 없이 손 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대만의 교훈은 무너지는 것을 끝까지 지키는 게 아니라, 아직 힘 있을 때 다음 칸으로 갈아타는 것이었다. 자산으로 치면 특정 산업이나 종목이 최고조일 때가 오히려 비중을 점검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건 일반적인 관점이지 투자 권유가 아니며, 나는 투자 전문가가 아니므로 구체적 판단은 각자의 상황과 전문가 상담을 통해 내리는 것이 옳다.
둘째, 아직 초기인 다음 생태계로 스킬과 시간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대만이 열아홉 명을 미래에 심었듯, 개인도 지금 열매를 다 따 먹기보다 다음 시대에 쓰일 역량에 일부를 투자하는 선택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이나 분야를 배우는 데 시간을 배분하는 것은, 당장은 손해처럼 보여도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 본다.
셋째, 자녀 교육이나 커리어 설계를 '지키는 산업’이 아니라 '올라갈 산업’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안정을 붙잡기보다, 성장 초기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편이 길게 보면 낫다는 판단이다. 다만 이 역시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 절대적 정답은 없다.
당신의 부는 지키는 것인가, 올라가는 것인가
대만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고 나는 본다. 상식은 "성공한 산업은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대만은 잘 나가던 조립업을 정점에서 스스로 버림으로써 이겼다. 지켜서가 아니라 버려서 살아남은 것이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기가 터졌을 때가 아니라, 아직 잘 나가고 있을 때라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한국의 반도체는 지금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하지만 나는 이 풍요가 다음 사다리를 준비하는 발판인지, 아니면 그 자체를 지키는 데만 매달리는 안주인지 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예측한 사람이 아니라 예측을 실행에 옮긴 사람의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남기고 싶다. 지금 당신이 붙잡고 있는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아직 힘이 있을 때 갈아타야 할 사다리 한 칸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느냐가, 다음 시대의 자리를 가를 지도 모른다.
출처: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의 반도체 산업 역사 자료 및 ITRI TODAY, 타이베이 타임스 ‘The breakfast that sparked Taiwan’s IC industry’, 위키백과 ‘판원위 안(Pan Wen-Yuan)’ 항목, IEEE 스펙트럼 ‘Morris Chang: Foundry Father’, TSMC 및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관련 산업 분석 자료, 국내 경제 매체의 대만 반도체 및 한국 반도체 의존 관련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