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년을 잃은 나라가 다시 일어선 날
지난 편에서 나는 일본이 무너지던 30년을 한국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무너진 이야기만 하고 끝내면 절반만 본 셈이다. 진짜 배울 것은 그다음, 즉 일본이 어떻게 다시 일어섰느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24년 2월 닛케이지수가 34년 만에 1989년 고점을 넘어선 건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십수 년에 걸친 구조 개혁과 정책 전환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상징적이라고 보는 장면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24년 3월,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금리를 올리며 8년간 이어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낸 것이다. 디플레이션이라는 긴 저주에서 벗어났다는 공식 선언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다른 하나는 임금이다. 2024년 춘투(춘계 임금협상)에서 평균 임금인상률이 5.10%를 기록하며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5%대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5.25%로 더 올랐다. 30년간 임금이 사실상 얼어붙어 있던 나라에서 이건 지진 같은 변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무너지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지만 일어서는 데는 한 세대가 걸린다는 걸, 일본은 몸으로 증명했다. 부러움과 경각심이 동시에 들었다. 부러운 건 그들이 결국 탈출했다는 사실이고, 경각심이 드는 건 그 탈출에 무려 34년이라는 값비싼 청구서가 붙었다는 점이다. 이건 조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인데, 우리는 그 청구서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부활의 세 축은 무엇이었나
일본의 반등을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대개 틀린다. 나는 최소한 세 개의 축이 맞물렸다고 본다.
첫째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 이른바 밸류업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부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에 못 미치는 상장사들에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요구하고, 개선 노력을 공시하도록 압박했다. 그 결과 프라임 시장의 평균 PBR이 2022년 1.1배 수준에서 1.4배까지 올랐고, 만년 저평가에 시달리던 스탠더드 시장도 개선됐다. 나는 이 변화의 핵심이 '주주를 진짜 주인으로 대접하기 시작했다’는 태도 전환에 있다고 본다.
둘째는 엔저와 그에 따른 기업 실적 반등이다. 약한 엔화는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였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엔화로 환산할 때 실적을 부풀리는 효과를 냈다. 물론 엔저는 수입 물가를 밀어 올려 서민 생활을 짓누른다는 뚜렷한 그늘도 있다. 나는 엔저를 마냥 부활의 공신으로만 보는 시각에는 반대한다. 어디까지나 양날의 검이었다. 다만 오랫동안 시장을 짓눌렀던 '재팬 디스카운트’가 이 흐름 속에서 상당 부분 해소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셋째는 디플레이션 심리의 반전이다. 임금이 오르고 물가가 완만히 상승하자 '내일 더 싸질 텐데’라며 지갑을 닫던 소비 심리가 조금씩 풀렸다. 나는 이 세 번째 축이 가장 근본적이라고 본다. 아무리 증시가 오르고 기업이 개혁을 해도, 사람들이 미래를 비관하며 돈을 쓰지 않으면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다. 이 세 축은 서로 물고 물린다. 개혁으로 기업이 좋아지고, 실적이 임금으로 흘러가고, 임금이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30년 악순환의 정확한 반대 방향이다.
한국의 밸류업은 지금 어디쯤 와 있나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미 일본의 처방 중 하나를 따라 하고 있다. 2024년부터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된 밸류업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한국 기업이 실적이나 성장성에 비해 만성적으로 저평가받는 현상을 풀어보자는 시도다. 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기업의 주가 수익률이 미참여 기업보다 나았다는 분석도 나왔고, 지수를 구성하는 선도 기업들의 참여율도 제법 높았다. 나는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본다.
다만 나는 여기서 마냥 낙관하지는 못하겠다. 일본의 밸류업이 성과를 낸 데는 도쿄증권거래소가 사실상 강제에 가까운 압박을 꾸준히 가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반면 한국은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에 무게가 실려 있어, 정작 개혁이 절실한 저 PBR 기업들이 빠져나갈 여지가 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점이 나는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도가 '보여주기’에 그치느냐, 실제 지배구조와 주주환원의 체질을 바꾸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다. 일본의 부활을 한국에 그대로 복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엔저라는 강력한 외부 순풍을 탔지만, 한국은 원화 약세가 물가와 가계부채에 주는 부담이 훨씬 크고, 부동산에 자산이 쏠린 구조도 다르다. 나는 일본의 '결과’가 아니라 '태도’를 훔쳐야 한다고 본다. 주주를 진짜로 존중하고, 임금과 소비의 선순환을 정책의 중심에 두며, 디플레이션 심리가 자리 잡기 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그 태도 말이다.
부활의 교훈을 내 자산에 적용하는 법
그렇다면 개인은 이 부활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조언이라기보다 내가 스스로 정리해 둔 원칙에 가깝다.
첫째, 주주환원을 진짜로 하는 기업을 눈여겨보는 일이다. 일본 부활의 한 축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저성장기일수록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문화가 있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는 종목을 볼 때 화려한 성장 서사보다 배당 성향과 자사주 정책, 지배구조를 먼저 확인하려 한다. 다만 이건 특정 종목 추천이 아니라 기준에 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해둔다.
둘째, 제도적 그릇을 먼저 채우는 일이다. 밸류업 흐름이 한국 증시에 자리 잡는다면 그 과실은 장기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는 세제 혜택이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연금저축, 개인형 퇴직연금(IRP) 같은 장치가 있고, 이 그릇 안에서 배당주나 지수를 담으면 세금 부담을 줄이며 복리 효과를 키울 수 있다. 나는 저성장기일수록 수익률 몇 퍼센트포인트보다 세금과 수수료를 아끼는 '새는 곳 막기’가 먼저라고 본다. 세제와 한도는 자주 바뀌니 실제 활용 전에 최신 조건을 꼭 확인하시길 권한다. 나는 세무·재무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건 판단을 돕는 정보일 뿐이다.
셋째, 임금과 커리어의 관점을 바꾸는 일이다. 일본 부활의 진짜 엔진은 증시가 아니라 33년 만의 임금 반등이었다고 나는 본다. 개인 차원에서 이건 '내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산업과 기술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라’는 신호로 읽힌다. 성장하는 분야의 역량을 쌓아두면, 임금이 오르는 흐름이 왔을 때 그 파도를 먼저 탈 수 있다. 저성장기에도 산업 간 격차는 벌어지므로, 나는 하나의 안정된 자리보다 '옮겨 탈 수 있는 능력’에 더 투자하려 한다.
우리는 34년을 줄일 수 있을까
일본의 부활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해준다. 하나는 아무리 깊은 침체라도 결국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그 탈출에 한 세대라는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경고다. 나는 이 두 메시지를 함께 쥐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희망만 보면 안일해지고 경고만 보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게 주어진 진짜 기회는, 일본이 30년을 잃고 나서야 배운 것을 우리는 잃기 전에 배울 수 있다는 데 있다. 밸류업이라는 처방을 이미 손에 쥐고 있고, 임금과 소비의 선순환이라는 방향도 알고 있다. 관건은 그것을 '흉내’가 아니라 '체질’로 만들 수 있느냐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일본이 34년에 걸쳐 되찾은 것을, 한국은 그보다 짧게 이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당신은 오늘 어떤 준비를 시작하겠는가.
출처: 닛케이지수의 34년 만의 고점 회복은 앞선 보도들을 참고했다. 일본은행의 17년 만의 금리 인상과 마이너스 금리 정책 종료는 연합뉴스 및 관련 보도를 인용했다. 일본 춘투 임금인상률(2024년 5.10%, 2025년 5.25%)은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등의 보도를 참고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밸류업 정책과 프라임 시장 PBR 변화(1.1배→1.4배)는 한국금융연구원(KIF) 자료 및 조선비즈 보도를 인용했다.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의 추진 배경과 성과는 금융위원회 관련 보도 및 현대경제신문, 더 벨 등의 보도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