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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0년 전이 한국의 지금인 이유

by econsurvival 2026. 8. 20.

34년을 삼킨 지수 하나가 던진 질문

2024년 2월 22일, 일본 닛케이지수가 1989년 12월 29일에 찍은 38,915라는 숫자를 마침내 넘어섰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 34년 2개월이다. 한 세대가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까지 할 시간을, 일본 증시는 그저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데 다 써버린 셈이다. 이 숫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다. 개인적으로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을 그동안 너무 관용어처럼 흘려들었던 것 같다. 34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 앞에 서니, 그게 얼마나 긴 형벌이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더 인상적인 건 자산 가격의 낙폭이다. 일본의 지가는 1991년 정점 대비 주택지가 약 60% 넘게 빠졌고, 평균적으로도 절반 수준까지 주저앉았다는 KDI의 분석이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춰 섰다. 우리는 흔히 자산 가격이 '조정’을 받는다고 표현하지만, 조정이라는 부드러운 단어로는 담기지 않는 규모의 붕괴가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남의 나라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의 자산 구조, 특히 부동산에 걸린 온 국민의 기대를 떠올리면 더욱 그랬다.

 

이 편의 진짜 반전은 여기서 시작된다. 일본은 이미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오히려 이제 막 어두운 입구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일본의 오늘이 아니라 일본의 30년 전이 한국의 거울이라고 본다. 부활한 일본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무너지던 시절의 일본을 복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 예언이 아니라 진행형 시나리오이고, 우리가 지금 몇 페이지째를 읽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일본을 이긴 걸까

한동안 언론을 뜨겁게 달군 뉴스가 있었다. 2024년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 6,024달러로 일본(3만 2,476달러)을 앞질렀다는 소식이었다. 숫자만 보면 분명 추월이다. 그런데 나는 이 뉴스를 보며 웃지 못했다. 이건 우리가 위로 뛰어올라 이긴 게 아니라, 상대가 엔저와 저성장으로 아래로 내려온 자리에 우리가 도착한 결과에 가깝기 때문이다. 달리기에서 앞차를 추월했는데 알고 보니 그 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려오고 있었다면, 그걸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부분이 나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국이 지금 밟고 있는 변수들을 하나씩 겹쳐보면 불편할 정도로 일본의 옛 궤적과 닮았다.

 

첫째, 인구다. 일본은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1993년에 정점을 찍고 꺾였는데, 한국은 그 곡선을 더 가파른 속도로 따라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대로, 붕괴 당시 일본의 1.2~1.5명 대보다 오히려 더 낮다. 인구 문제만 놓고 보면 한국이 30년 전 일본을 이미 '추월’해버린 셈인데, 이건 결코 자랑할 추월이 아니다.

 

둘째, 성장률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대로 내려앉는 중이고 여러 기관은 2040년대에 0% 안팎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저성장의 완만한 하강 곡선, 이것 역시 일본이 먼저 걸었던 길이다.

 

셋째, 부채와 자산이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그 부채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일본 붕괴의 방아쇠가 자산과 부채의 결합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유사성은 가볍게 넘길 게 아니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한국은 곧 일본이 된다’는 단정은 과장이다. 한국은 반도체 같은 수출 경쟁력이 있고, 1997년 외환위기라는 급격한 붕괴와 구조조정을 이미 한 번 겪어냈다. 닮은 건 방정식의 변수이지, 결과가 정해진 건 아니다. 그래도 변수가 이렇게 겹치면 경고등은 켜두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서 일본은 어떻게 됐고, 한국은 어디로 가나

일본이 무너진 과정을 들여다보면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원인은 1990~91년의 주가와 부동산 폭락, 즉 버블 붕괴다. 하지만 진짜 상처는 그다음이었다. 자산이 꺼지자 사람들이 지갑을 닫았고, '내일 더 싸질 텐데 왜 지금 사’라는 심리가 퍼지며 총수요가 무너졌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다. 여기에 부실채권을 끌어안은 좀비기업을 은행이 오래 방치하면서 청산이 미뤄졌고, 정책 당국의 금리 대응마저 타이밍을 놓쳤다. 나는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절반은 붕괴 그 자체보다 '붕괴 이후의 잘못된 대응’에서 왔다고 본다. 이게 이 이야기의 가장 아픈 교훈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다시 일어섰을까. 34년 만의 증시 회복은 우연이 아니었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과 주주환원 확대, 엔저에 힘입은 기업 실적 반등, 오랫동안 시장을 짓눌렀던 이른바 '재팬 디스카운트’의 해소가 맞물린 결과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이 가장 의미심장하다. 일본은 30년을 잃고 나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았고, 뒤늦게라도 구조를 뜯어고쳐 탈출을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회복은 가능하다. 다만 그 대가로 한 세대의 시간을 지불해야 했다.

 

문제는 한국의 경로가 일본과 정확히 같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일본의 자산 붕괴는 전국이 고르게 식는 방식이었지만, 한국은 서울로의 수요 집중과 지방의 공동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양극화형에 가깝다. 거실 하나만 따뜻하고 나머지 방은 얼어붙는 집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나는 한국의 위기가 일본처럼 '전면 붕괴’로 오기보다 '분열’의 형태로 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건 어떤 면에선 더 다루기 까다로운 형태의 위기다. 평균의 착시 뒤에서 특정 지역과 세대가 조용히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 내가 붙잡으려는 세 가지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조언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에 가깝다.

 

첫째, '우상향 신화’와 결별하는 일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통했던 '일단 사두면 오른다’는 공식은 저성장·저출산·고령화가 겹치는 국면에서 그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의 30년이 증명한 게 바로 그것이다. 나는 자산을 볼 때 '오를 것’이라는 기대보다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가’를 먼저 따지려 한다. 배당, 임대수익, 이자처럼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들어오는 흐름이 저성장기의 실질적 방패라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세제와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습관이다. 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수익률 1%포인트, 세금 몇 퍼센트가 장기적으로 큰 격차를 만든다. 한국에는 세제 혜택이 있는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같은 장치가 마련돼 있다. 나는 이런 제도들이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저성장기일수록 '덜 잃는 구조’를 먼저 짜두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다만 세제와 한도는 자주 바뀌니 실제 가입 전에 최신 조건을 반드시 확인하시길 권한다. 나는 세무·재무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건 판단을 돕는 정보일 뿐이다.

 

셋째, 커리어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일이다. 일본 청년들 사이에 소비도 출세도 연애도 시들해진 이른바 '사토리 세대’가 등장한 건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아무리 뛰어도 앞차를 따라잡을 수 없던 저성장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었다고 나는 본다. 한국에도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직장, 하나의 소득원에 인생을 거는 대신, 기술과 소득의 출처를 여러 갈래로 넓혀두려 한다. 성장하는 산업 쪽으로 조금씩 몸을 기울이고,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 저성장기의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안전판이라고 믿는다.

잃기 전에 알 수 있을까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은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일본의 운율이 지금 한국에서 다시 들리는 듯하다. 다만 나는 이 글이 '한국은 망했다’는 비관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이 우리에게 준 진짜 교훈은 붕괴 자체가 아니라, 붕괴 이후의 대응이 30년의 길이를 결정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짜 질문은 '우리가 일본처럼 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일본의 실수를 학습했느냐’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나라가 흔들리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데는 한 세대가 걸린다. 일본은 30년을 잃고 나서야 무엇이 소중했는지 알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잃기 전에 그것을 알아챌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일본의 30년 전과 한국의 지금, 당신이 보기에 가장 닮은 지점은 어디인가. 그리고 만약 저성장이 정말 한 세대를 관통한다면, 당신은 오늘 어떤 삶의 전략을 세우겠는가.

 

 

출처: 닛케이지수의 34년 2개월 만의 고점 회복과 1989년 종가 관련 내용은 KBS 뉴스 및 일본 증시 관련 국내외 보도를 참고했다. 한국의 2024년 1인당 GDP 일본 추월 수치(3만 6,024달러 대 3만 2,476달러)는 한겨레 보도를 인용했다. 일본 지가 하락 폭과 잠재성장률 전망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및 경제전망 자료를 참고했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관련 내용은 국제금융협회(IIF) 발표를 인용한 국내 보도에 근거했으며, 합계출산율 통계는 통계청(KOSIS) 및 관련 언론 보도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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