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생존 전략

퇴직연금 DB형 vs DC형 전환 타이밍: 임금피크제 진입 직전 무조건 바꿔야 하는 이유

by econsurvival 2026. 9. 16.

25년 일한 A 씨의 퇴직금이 4천만 원 사라진 계산

숫자 하나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25년간 한 직장에서 일한 A 씨의 퇴직 직전 평균임금이 400만 원이라고 해 보죠. 이 상태에서 퇴직하면 A 씨의 퇴직금은 400만 원에 근속연수 25년을 곱한 1억 원입니다. 그런데 A 씨가 임금피크제에 들어가 5년을 더 일하고, 그 대가로 매년 임금이 깎여 마지막 평균임금이 200만 원으로 반토막 났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근속은 30년으로 늘었지만 퇴직금은 200만 원 곱하기 30년, 즉 6천만 원입니다.

 

일은 5년 더 하고 손에 쥐는 돈은 4천만 원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 숫자를 처음 계산기로 두드려 보는 분들 표정이 대개 비슷합니다. 저도 후배들 앞에서 이 예시를 꺼낼 때마다 잠깐 정적이 흐르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핵심은 DB형 퇴직연금과 퇴직일시금의 계산 구조에 있습니다. 이 두 방식은 퇴직 직전 30일분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하는데, 여기서 기준이 되는 건 '마지막 시점의 임금’입니다. 그러니 임금피크제로 급여가 깎이는 순간, 과거 25년간 고임금으로 쌓아 올린 실적이 뒤늦게 낮아진 임금 기준으로 재계산돼 통째로 쪼그라듭니다. 저는 이 지점을 늘 '뒤에서 앞을 갉아먹는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DB형과 DC형은 애초에 시계가 다르게 돌아갑니다

두 제도의 근본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 이 글의 결론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DB형, 즉 확정급여형은 회사가 적립금 운용 책임을 지고 퇴직 시점의 임금을 기준으로 급여를 확정해 주는 방식입니다. 반면 DC형, 확정기여형은 회사가 매년 근로자 총급여의 12분의 1 이상을 근로자 개인 계좌에 넣어 주고, 그 이후의 운용은 근로자 본인이 맡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깁니다. DC형은 임금이 높을 때 이미 그 시점의 금액이 내 계좌에 '박제’되어 들어옵니다. 나중에 임금피크제로 급여가 깎여도, 이미 들어온 돈은 건드려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의 낮아진 임금만 그만큼 적게 적립될 뿐이죠. DB형처럼 과거 실적 전체가 재계산되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시계가 다르게 돈다는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DB형은 '퇴직하는 그 한 순간의 임금’이 과거 전부를 지배하고, DC형은 '매년 그해의 임금’이 그해의 몫을 확정합니다. 임금이 계속 오르는 사람에게는 DB형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금이 꺾이는 게 예정된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정반대가 됩니다. 여러분이 임금피크제 대상이라면, 자신은 이미 후자에 속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제가 오래 지켜본 결론은 이렇습니다. 제도의 우열을 따지는 게 아니라, 내 임금 곡선이 지금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가 전부입니다.

왜 하필 '진입 직전’이 마지노선일까요

전환 타이밍이 이 글의 진짜 핵심입니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순간 DB형에서 DC형으로 갈아타면, 전환 시점까지 이미 발생한 퇴직금은 전액 곧바로 근로자의 DC 계좌로 이체됩니다. 이때 정산 기준이 되는 임금은 아직 깎이기 전, 즉 가장 높은 시점의 임금입니다. 그러니 고임금 구간에서 쌓인 몫을 온전히 보존한 채 계좌에 옮겨 담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임금피크제가 이미 시작돼 급여가 깎인 뒤에 뒤늦게 전환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이미 낮아진 임금을 기준으로 정산이 이뤄질 위험이 있습니다. 며칠, 몇 달 차이로 정산 기준 임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죠. 이 대목에서 제가 늘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이건 ‘언젠가 바꾸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기준 임금이 살아 있을 때 바꿔야 하는’ 문제입니다.

 

한 가지 오해도 풀고 가겠습니다. 이 글은 연금을 어떻게 받느냐, 즉 수령 단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퇴직 직전 회사에서 제공하는 퇴직연금 유형을 바꾸는 순간의 손익, 그 한 번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를 뒤섞으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퇴직연금에 아예 가입돼 있지 않은 분이라면 다른 길도 있습니다. 임금피크제 실시는 법이 정한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에 해당하므로, 임금이 가장 높을 때 중간정산을 신청해 고임금 기준으로 정산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결국 원리는 같습니다. 임금이 꺾이기 전에 그 시점의 가치를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DC형이 정답일까요

여기서 선배로서 한 가지 브레이크를 걸겠습니다. "임금피크제 앞이면 무조건 DC형"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전환 자체의 손익 계산은 분명 DC형이 유리한 경우가 많지만, 전환 이후의 운용 책임은 온전히 여러분 몫으로 넘어옵니다.

 

DC형으로 넘어온 돈은 이제 스스로 굴려야 합니다. 원리금보장상품에 그대로 둘 수도 있고, 펀드나 ETF 같은 실적배당상품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정년을 앞둔 시점에 익숙하지 않은 투자로 원금을 훼손하면, 애써 지켜 낸 고임금 기준 퇴직금이 다른 방식으로 새어 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 주도형 자산관리라는 말이 근사하게 들리지만, 준비 없이 맞닥뜨리면 부담스러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임금 곡선이 꺾이는 게 확실하다면 전환으로 '기준 임금’을 지키는 판단은 대체로 합리적입니다. 다만 전환과 동시에, 넘어온 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선을 미리 그어 두시는 게 좋습니다. 정년이 가까울수록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보수적 운용을 기본값으로 삼는 분들이 많은데, 이 판단만큼은 각자의 성향과 노후 계획에 맞춰 신중히 정하시길 권합니다.

 

당신이 지금 임금피크제 안내문을 받아 든 상태라면, 오늘 저녁 딱 하나만 확인해 보시죠. 회사가 DC형 전환 선택권을 부여하는지, 그리고 전환 신청 마감 시점이 언제인지 말입니다. 기준 임금이 살아 있는 창은 생각보다 짧게 열려 있다가 닫힙니다. 그 창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이 글의 전부입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한 교육 콘텐츠이며 특정 상품 권유나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전환 조건과 정산 기준은 회사 규약과 개인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결정 전에는 회사 인사팀과 관할 금융기관에 최신 기준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조선일보 경제면 ‘퇴직연금, 임금 피크제 앞뒀다면 DC형으로 전환해야’(2025년 6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KCIE) 콘텐츠 ‘임금피크제 앞두고 DB에서 DC로 바꿨는데… 잘한 것 맞나요?’,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제도 안내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econsurvival